축법란(竺法蘭)
축법란도 역시 중천축국 사람이다.
경론(經論) 수만 장을 외워 천축국 학자들의 스승이라고 자부하였다.
당시 채음 일행이 그 나라에 도착하고 난 뒤,
축법란은 섭마등과 함께 돌아다니며 교화[遊化]할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서로 따라서 한나라에 왔다.
그 때 축법란에게 배우던 무리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고 막자,
그는 샛길로 빠져나가 이르렀다.
낙양에 도착한 이후 축법란은 섭마등과 함께 머물렀다.
얼마 지나 중국말을 잘하자, 채음이 서역에서 가져 온 불경에서
『십지단결경(十地斷結經)』·『불본생경(佛本生經)』
·『법해장경(法海藏經)』·
『불본행경(佛本行經)』·『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다섯 부(部)를 번역하였다.
도적의 난리통에 도읍을 옮기느라 네 부는 없어져서
강좌(江左)에 전하지 않는다.
오직 『사십이장경』만이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이천여 글자 가량이 된다.
중국 땅에 현존하는 여러 경전들은 이것을 시초로 삼는다.
또 채음은 서역에서 석가께서 기대어
계신 모습을 그린 그림을 얻었다.
이것은 우전왕(優田王)5)의 전단상사(旃檀像師)가
그린 네 번째 작품이다.
낙양에 이르자 명제(明帝)는 즉시 화공으로 하여금 베껴 그려서
청량대(淸凉臺)와 현절릉(顯節陵)에 걸어 두었다.
원래의 상(像)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예전에 한무제가 곤명지(昆明池)6)를 파다가
바닥에서 검은 재[黑灰]를 얻었다.
이것에 대하여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말하였다.
“자세히 알지 못하니, 서역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축법란이 온 후에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가서 물어 보았다.
축법란이 말하였다.
“세계가 종말을 맞을 때에 겁화(劫火)가 훨훨 불탑니다.
이 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방삭의 말이 증명되자 믿는 자들이 더욱 늘었다.
후에 축법란이 낙양에서 돌아가셨다.
그 때 나이는 60여 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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