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승 전

축법란

불암산 2011. 8. 13. 14:53

      축법란(竺法蘭) 축법란도 역시 중천축국 사람이다. 경론(經論) 수만 장을 외워 천축국 학자들의 스승이라고 자부하였다. 당시 채음 일행이 그 나라에 도착하고 난 뒤, 축법란은 섭마등과 함께 돌아다니며 교화[遊化]할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서로 따라서 한나라에 왔다. 그 때 축법란에게 배우던 무리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고 막자, 그는 샛길로 빠져나가 이르렀다. 낙양에 도착한 이후 축법란은 섭마등과 함께 머물렀다. 얼마 지나 중국말을 잘하자, 채음이 서역에서 가져 온 불경에서 『십지단결경(十地斷結經)』·『불본생경(佛本生經)』 ·『법해장경(法海藏經)』· 『불본행경(佛本行經)』·『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다섯 부(部)를 번역하였다. 도적의 난리통에 도읍을 옮기느라 네 부는 없어져서 강좌(江左)에 전하지 않는다. 오직 『사십이장경』만이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이천여 글자 가량이 된다. 중국 땅에 현존하는 여러 경전들은 이것을 시초로 삼는다. 또 채음은 서역에서 석가께서 기대어 계신 모습을 그린 그림을 얻었다. 이것은 우전왕(優田王)5)의 전단상사(旃檀像師)가 그린 네 번째 작품이다. 낙양에 이르자 명제(明帝)는 즉시 화공으로 하여금 베껴 그려서 청량대(淸凉臺)와 현절릉(顯節陵)에 걸어 두었다. 원래의 상(像)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예전에 한무제가 곤명지(昆明池)6)를 파다가 바닥에서 검은 재[黑灰]를 얻었다. 이것에 대하여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말하였다. “자세히 알지 못하니, 서역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축법란이 온 후에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가서 물어 보았다. 축법란이 말하였다. “세계가 종말을 맞을 때에 겁화(劫火)가 훨훨 불탑니다. 이 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방삭의 말이 증명되자 믿는 자들이 더욱 늘었다. 후에 축법란이 낙양에서 돌아가셨다. 그 때 나이는 60여 세이다. 모셔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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