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향기

이 세상에 내것이 뭐가 있겠는가

불암산 2011. 8. 11. 20:08

      송광사를 휘휘 감아 도는 개울을 지나 대나무 숲에서 회주 법흥 스님을 만났다. 허름한 누더기를 걸친 채 한가로움을 즐기고 계셨다. 언제 누가 찾아오더라도 항상 반가워 하는 스님이 이날따라 꾸중 섞인 농담으로 멀리서 찾아온 손을 맞는다. “내놓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 하러 예까지 왔어! 난 큰스님 아니야.” 하지만 스님은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는 요청에 놀리던 방에 손수 장작을 땠다. 왠만한 산사에는 보일러를 설치해 난방을 하지만 스님은 여태 보일러를 들이지 않았다. 제 몸 편하자고 소중한 정재를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옆에서 모시는 시자스님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요사에는 ‘방우산방(放牛山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가지런히 정리된 앉은뱅이책상에서 군더더기 없는 수행자의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법흥 스님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장으로 시선을 던진다. 스님은 고려대 재학시절 책에 묻혀 살던 국문학도였다 . 며칠 밤을 새워가며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었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며 눈물짓곤 했다. “산승이 뭐 별게 있나. 하릴 없이 책 보면서 살고 있어. 저 책장에 있는 책, 절반도 못 읽었구먼.” 스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간 정말 그렇게 생각할 일이지만, 스님의 일과 가운데 책을 읽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기도와 참선 등 평생 해오던 수행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기도와 수행을 스님은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오후 5시, 저녁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스님은 하던 말을 멈추고 미련 없이 털고 일어선다. 먼 길 왔을테니 공양 먼저 하란다. 주석하고 있는 화엄전을 나서서 후원으로 향한다. 큰절의 어른스님이니 따로 공양상을 받을 만도 하건만, 스님은 대중공양 원칙을 절대로 깨는 법이 없다. “요즘 대중생활을 꺼리는 수행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왜 대중생활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야. 선방에 앉아서 화두 드는 일만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 . 함께 부대끼면서 배우는 것도 수행이야. 수많은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부처님법인데….” 법당마다 울려 퍼지던 예경소리를 타고 해가 뉘엿뉘엿 조계산을 넘은지 30여분도 채 되지 않아 송광사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화엄전을 병풍 치듯 둘러싼 대나무 숲으로 별이 쏟아진다. 부엌의 솥에서 더운 물을 길어 세면한 법흥 스님이 불청객을 위해 책이며, 과일이며 이것저것을 내놓는다. 스님은 늘 이렇다. 행여 누구라도 찾아오면 아까운 것 없이 모두 내주고 만다. 뭐라도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 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 것이라고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내 것’에 집착하거든. 소유함이 없이 모든 것을 줌으로써 온 세상을 가질 수 있는데 말이야.” 스님이 건네는 선물 가운데 책은 반드시 챙겨주시는 ‘필수품’이다. 스님이 20여년간 나누어준 책이 어림잡아도 3만여 권이 넘는다. “책에 길이 있어. 난 그 길을 주고 싶은거야. 받은 사람이 내가 선물한 책을 보면서 발심을 하면 그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겠어. 받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받아서 읽고 발심하는 사람이 되게나.” 스님은 기억력이 비상하기로 유명하다. 좋은 경구나 책의 내용을 달달 외는 실력은 나이를 먹어서도 변함이 없다. 대중을 향해 쉴새없이 법문하는 것을 들으면, 부처님 말씀을 빠짐없이 기억했다는 아난존자를 떠올리게 된다. 스님은 경전을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누구에게라도 들려주고 싶은 문구를 접하면 반드시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암기력을 선보이는 스님만의 비법이다. 그렇게 정리해놓은 노트가 5권이나 된다. .” *모셔온글*

      솔향기 풍경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