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향기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부처님과 조사도 어쩔수 없다

불암산 2009. 4. 22. 22:53

      육조스님은 나무를 베어팔고, 방아를 찧어 가면서도 자기의 본래 면목을 깨달아 증득했습니다. 부처님이 마하 가섭에게 전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 삼처전심(三處專心) 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는 스스로 정진하시어 대오각성하셔야 합니다.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처님과 삼세제불이 출현해도 이것은 어쩔 수 없고, 역대 제대조사가 출현해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깨닫지 않으면 과학으로나 물질문명도 이 도리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에 이르기를 ‘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이라 했습니다. 가히 얻는다고 하나 본래 얻을 것도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본래 좌선이라는 것은 육조 혜능스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조계문중의 이심전심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육조스님께서는 상이 있는 의발을 전해 받은 분이지만 스님께서는 의발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에 끄달리는 중생이 형식에 집착해 파벌이 생기고 그로 인해 과오가 생기므로 형식을 전하지 말고 이심전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스님 이후에는 의발을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문에서는 설교보다는 불립문자 견성성불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설교를 부정하고 있습니다만 몇가지 주된 법문을 소개하면 임제조계 법문인데, 임제의 할, 덕산의 30방입니다. 즉 모든 물음에 대해 알아도 30방, 몰라도 30방이고,조주의 다(茶) 즉 조주에게 법문을 청하는 모든 이에게 ‘차나 한잔 마시게’하여 법문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써 본래 그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에 여하시본래면목(如何是本來面目)이닛고, “부모님의 몸에서 태어나기 이전에는 어떤것이 본래의 참 모습인가” 이를 깨달으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또 불교에서는 유위법과 무위법이 있는데 형식 형상 모양이 있는 유위법이라 하며 세상의 법은 모두 이 유위법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유위법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 형식 형상이 없는 무위법으로 공부합니다. 법도 무위법이요,설법도 무설이라. 설하는 것으로 알아야 하지만 설하지 않는 것으로도 알아야 합니다. 이 몸도 본래 없는 곳에서 왔지 있는 곳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괴로움은 우리 자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로병사도 없는 것인 바 우리는 무(無)를 깨달아야 합니다. 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니고 공한 것입니다. 허공은 비어있지만 진정 비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진공묘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라는 것은 볼래야 볼 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모셔온글
      솔향기 풍경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