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마셔야 물의 맛을 안다
"다만 범속한 정식(情識)을 없애면 될 뿐
따로 성스런 지해(知解)는 없습니다.
당신 은 이미 한 번 웃음에서 활연히 정안(正眼)이 열려서
세간의 소식을 문득 잊었으니,
힘을 얻음과 얻지 못함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보아
그 차갑고 따스함을 스스로 알 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선이란 '참 마음을 알고 자성을 보는 것'[識心見性]이다.
그러나 참 마음을 '알고' 자 성을 '본다'라고 하지만,
마음은 '알려지는 물건'이 아니고 자성은 '보여지는 물 건'이 아니다.
마치 허공이 그 속에 삼라만상을 담고 있듯이,
마음은 그 속에 무슨 물 건이든 다 담겨지는 테두리 없는 그릇이다.
마음이라는 그릇은 테두리가 없으므로 그 속에 담겨지는 물건을 보아
그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고,
아무 물건도 담 지 않은 빈 그릇이 되면 그 그릇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알려지는 것은 다만 담겨지는 물건뿐이고
그릇은 알려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물건을 보고 그릇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그릇이라고 할 때에는,
그것이 쇠로 만들 어진 것이든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든
그 테두리의 재질을 두고 그릇이라고 하는 것 이 아니라,
그 속에 물건을 담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하는 역할을 두고
그릇이라고 하 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참 그릇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테두리가 아니라,
물건 을 담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이다.
그러므로 보이고 만져지 는 테두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담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하는 기능만 있다면 그것이 참 된 그릇이다.
마음이 바로 이러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그릇을 확인하는 길은 그 속에 담겨지는
정식(情識)이라는 물건 만을 보아서는 안되고,
그 정식이 담겨지고 비워지는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물건이 없다면 기능은 파악되지 않으므로,
물건을 보되 물건을 보지말고
그 물건이 담 겨지고 비워지는 그릇의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겨지는 물건인 정식은 색깔·소리·냄새·맛·촉감·
생각이라는 형태로 끊임 없이 들어왔다가 빠져나 간다.
참된 마음은 이처럼 무수한 정식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기능이다.
따라서 매 순간 순간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정식을 보되
정식만을 보지 말고
정식의 생멸변화 를 잘 보아서 정식을 담고 비워내는 기능을 파악해야
비로소 마음을 알 수가 있다.
기능이란 지금 이 순간의 생멸변화의 움직임일 뿐이므로,
어떤 행태로든 고정된 정식 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혜 스님은 "
다만 범속한 정식(情識)을 없 애면 될 뿐
따로 성스런 지해(知解)는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고,
또 "피부가 모두 탈락하면 오직 하나의 진실만이 있으니,
마치 전단( 檀) 나무의 무성한 가지가 모두 탈락하면 오직
참 전단만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는
약산유엄 선사의 말을 인용하여 이것을 보충설명하는 것이다.
자성(自性)을 본다는 것은 바로 이 모양 없는 기능을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황벽 스 님은 자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배상공의 물음에,
"보는 것이 곧 자성이니, 자성으로써 다시 자성을 볼 수는 없다.
또 듣는 것이 바로 자성이니 자성으로서 다시 자성을 들 을 수는 없다.
만약 그대가 자성이라는 견해를 짓는다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자 성 밖에
또 하나의 다른 법(法)이 생겨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성을 파악하고 참 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은,
매 순간 매 순간의 보고·듣고 ·
냄새 맡고·맛 보고·느끼고·생각하는 속에서,
색깔·소리·냄새·맛·촉감·생각 이라는
정식(情識)을 놓아버릴 때 열릴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놓아야지 저것을 놓 아야지 하는 격식을
앞세우고 수행한다면,
놓아버린다는 생각에 매달리게 되므로
정식 을 벗어나기가 오히려 어렵게 된다.
그저 ["다만 범속한 정식(情識)을 없애면 될 뿐
따로 성스런 지해(知解)는 없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 무엇인가?] 하고 간절히 참구할 뿐이다.
그리하여 한 번 웃음에서 활연히 정안(正眼)이 열려서 세간의 소식을
문득 잊 어버린 이참정 같은 체험을 하여야 비로소,
물을 직접 마셔보아 그 차갑고 따스함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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