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삼보(歸依三寶)"하오며..글 전문은 자비경을 공부하다..
참고자료로 검색한 글입니다
부처님"의 `보편적 사랑의 찬가″인 자비경" 입니다..^^
♡^*자비경-慈悲經 "
Metta Sutta-멧따숫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연약한 것이거나 강한 것이거나,
짧거나 길거나, 큰 것이거나 작은 것이거나,
보이는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이미 태어난 것이거나 장차 태어날 것이거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여, 모두 다 행복하여라.
어떠한 경우라도 남을 속이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라.
원한과 분노로부터 벗어나 남을 해치지 말라.
어미가 위협을 무릅쓰고 자식을 지키듯,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갈고 닦아라.
위이거나 아랫니거나 모든 생명을 방해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적의를 품지 말고, 착한 행을 갈고 닦아라.
서 있을 때이거나 걸을 때이거나 앉아 있을 때이거나
누워 있을 때이거나 눈을 뜨고 있는 한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행을 쌓기에 최선을 다하라.
이러한 삶이 가장 거룩한 삶이니라.“
자비경, <쌍윳따 니까야>중에서
[ 자비경의 배경... ]
부처님이 필수 자비경을 설하시게 된 동기는
아짜리야 붓다고샤가 쓴 주석서에 설명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는 부처님 시대부터 끊임없이 대물림해 내려오는
장로들의 구전(口傳)에 근거한 것이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에 어떤 비구 대중 5백 명이
부처님께 각자 기질에 맞는 특수한 명상기법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우기의 넉 달간을 안거/安倨 하면서
명상에 전념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우안거가 시작되기 한두 달 전 비구들이 방방곡곡에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들어 세존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다음
각기 정사나 숲 속의 거처 또는 토굴로 돌아가
정신적 해탈에 매진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그들 5백 명의 비구들도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던
사왓티/사위성,舍衛城 의 아나타삔디까가 지은
제따 숲속 정사[기원정사, 祇園精舍]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각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다음,
비구들은 적당한 거처를 찾아다니다
히말라야 산록에서 아름다운 작은 언덕을 발견했다.
주석서에 따르면,
그 언덕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는데
마치 반짝이는 푸른 수정과도 같았다.
서늘하고 울창한 녹색 숲을 장식처럼 두른 그 속에,
한 자락의 모래 깔린 땅이 마치 진주그물인양,
아니면 한 장의 은종이인양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시원한 물이 솟는 깨끗한 우물까지 갖춘 채로."
이 광경에 비구들은 넋을 잃었다.
부근에는 띄엄띄엄 마을이 있고
게다가 장이 서는 작은 읍내까지 있어
탁발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비구들은 이 목가적인 숲에서 하룻밤을 지샌 후
다음날 아침 탁발하러 장터로 갔다.
그 곳 주민들은 비구들을 보자 대단히 반가워했다.
사실 비구대중이 그처럼 궁벽한 히말라야의 오지까지
안거하러 오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신심있는 마을 사람들은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린 후,
부디 이곳에 계속 머물러만 준다면
그 모래땅에다 각자 앞으로 오두막을 한 채씩 지어드려,
밤낮을 거목의 묵은 가지 아래에서
명상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청하여마지 않는 것이었다.
비구들이 이를 받아들이자
그 일대에 사는 신도들은 즉시 숲가에 조그만 오두막들을 짓고,
그 안에 나무침대와 의자 그리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담을 항아리까지
빈틈없이 마련해주었다.
비구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각기 오두막에 자리잡은 다음,
이번에는 주야로 명상하기에 알맞은 나무 그늘을 골랐다.
그런데 이 거대한 나무들에는 목신들이 살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주택의 받침대로 이 나무들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목신들은 정진하는 비구들을 존경하여 온
가족이 기꺼이 그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처럼 수행자의 덕은 모든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았으며,
신령들은 특히 그랬기 때문에 비구들이 나무 아래에 앉자
집주인격인 신령들도 감히 그들 위에 머무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목신들은 비구들이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묵어가리라 생각하고
기꺼이 불편을 참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러 날이 가도 계속 비구들이
나무 아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자,
그들이 도대체 언제쯤에나 떠날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마을을 방문한 왕족 때문에
관리들에게 집을 징발당한 마을 주민들이
언제쯤이면 집에 되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멀리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상이었다.
이처럼 집을 빼앗긴 목신들은 마침내 자기들끼리 의논한 끝에
수행자들에게 무시무시한 형용을 나타내 보이고
끔찍한 소리를 내거나 메스꺼운 냄새를 피워
그들을 쫓아내기로 결의했다.
그들이 갖가지로 무서운 모습을 하고서 괴롭히자
수행자들은 새파랗게 질려 더이상 참선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신령들이 계속 못 견디게 굴자 마침내 그들은
마음을 챙기려는 기본자세마저 흐트러져 버리고
머릿속은 무섭게 짓누르는 형상과 소리 냄새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결국 비구들은 최연장 장로를 중심으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각자가 겪은 경험들을 토로하게 되었다.
장로는 "스님네들, 우리 세존께 가서
이 문제를 여쭈어보도록 합시다.
우안거에는 초기와 후기, 둘이 있지 않소.
이곳을 떠나게 되어 초기 우안거를 깨뜨리게 된다 해도 세존을 뵌 다음,
후기 안거는 지낼 수 있지 않겠소."하고 제안했다.
비구들은 이에 동의하고
마을의 신도들에게는 알릴 사이도 없이
당장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이윽고 그들은 사왓티에 도착하여
세존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끔찍한 체험을 말씀드린 뒤
다른 곳을 참선장소로 정해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인도 전역을 훑어보셨지만
그들이 해탈을 이룰만한 장소는 오로지
그곳밖에 없음을 아시고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비구들이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정진해야만 마음속의 때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신령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이 경을 외우고 닦아라.
이는 명상의 주제일 뿐 아니라 호신주/護身呪, paritta 도 되니라."
그리고는 세존께서
⊙필수 자비경 - 보편적 사랑의 찬가″를 읊으시자,
비구들도 세존 앞에서 따라 외운 다음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비구들이 자비경을 암송하며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하고 명상하면서
자신들의 숲속 거처에 다가가자,
목신들의 마음은 따뜻한 호의로 가득 차게 되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비구들을 깊은 공경심으로 맞아들였다.
그들은 비구들의 발우를 받아들고 비구들을 방으로 안내한 뒤
물과 음식을 대접하고는 다시 원래의 그들 모습으로 돌아가,
이제부터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것 없이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에 전념해달라고 청했다.
과연 목신들은 3개월의 우기 동안 비구들을
여러 모로 돌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도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주었다.
완벽한 고요를 누린 덕분에,
우기가 끝났을 때엔 모든 비구들이
정신적 완성의 극치에 이르게 되었다.
5백 명의 비구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
진실로 자비경"의 원래 지니고 있는 위력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누구든지 신령들의 보호를 빌고 자비에 대해 명상하면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자비경을 외우면 자신을 모든 면에서
방호하게 될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보호하게 되고
또 정신적 향상을 이루게 되는 바,
이런 사실은 누구든지 시험해보면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자비의 길을 따르는 이에게는 어떤 해도 닥쳐올 수 없는 것이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법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서가모니불
나무문수보현보살마하살..
성불하십시요..合掌 ^^

티벳트 명상 음악 :慈經/자비송"
연주...이메이 우이